에반게리온 OVA 판이 주로 반복적으로 두드러지게 사용하고 있는 소도구 들 중에서 전철, 워크맨, 책, 에스컬레이터 4가지는 공통점과 연관성이 있다. 또 대부분 현대인이 친숙하게 날마다 경험하는 소도구라는 점에서 공감을 형성한다.
남에게 마음을 열기도, 남에게 마음을 닫기도 어려워 하는, 소위 아카키 리쯔꼬의 말대로 '사는게 서투른' 현대인들 (좁게는 일본의 오타쿠, 넓게는 현대인 전부)에 주는 메시지가 강한 애니메이션.
오타쿠에 대한 실랄한 비난을 담고 있으며 개인의 세계에 빠져 있지 말고 현실로 나와 당당히 싸워라 라는 메시지를 일본의 오타쿠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오타쿠들의 심리상태를 (하지만 일반인 누구에게나 그러한 심리가 있다는 것을 절묘히 보여주기 위해) 4가지에 잔잔히 표현했다.
전철:
전철은 도시인들 대부분이 출퇴근 용도로, 이동수단으로 자주 이용하는 수단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밀폐된 공간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하지만 목적지까지 같다고는 볼 수 없는) 타인과의 어색하고도 불편한 동승.
옆자리에 앉아도 미소 한번, 대화한번 하지 않는 공간. 외로와 마음이 닿고 싶었는데 닿는 것은 불쾌하게 스치는 피부뿐인 공간. 헤지호저의 딜레마처럼 서로 체온을 나누려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가시로 찔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 다가갈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는 공간의 하나.
마음을 남에게 열고 싶은 사람에게는 집단속의 군중을 느끼는 고독한 밀폐공간이자 출퇴근 수단으로 쓸 수 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공간이며, 남에게 마음을 닫고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닿고 싶지 않은 타인들과 스침을 강제로 유발하는 묘한 공간.
에스컬레이터:
마주치고 싶건 마주치기 싫건 강제로 양방향으로 오르는 축과 내리는 축을 두어 스침을 유발시키나, 실제로 마주보는 쌍방의 축의 사람들간에 스침이 일어나지는 않는 기묘한 장치. 이 장치에 익숙해지면 물리적인 스침은 물론 시선 교차도, 말을 건네는 일도 쌍방간에 거의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기묘한 장치. 전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보통 에스컬레이터라는 장치를 이용해야 한다.
에스컬레이터 반대편으로 스쳐지나가는 사람을 못알아 보아 만남의 기회를 놓친다는 형태로 특히 일본 드라마에서 종종 이용되는 장치. 애틋함, 안타까움, 쓸쓸함을 표현하고 싶을 때, 일본인의 정서를 잘 설명해주는 수단으로 자주 묘사됨.
책, 워크맨:
이카리 신지의 경우 전철이란 공간 내에서 워크맨을, 아야나미 레이의 경우 책(문고판)을 남으로부터 자신을 어색하지 않게 하기 위해 사용한다.
난 너와 친하지 않지만 친해지고 싶지도 않아, 나는 너와 친해지고 싶지만 네가 마음의 문을 열 준비가 안되었구나. 서먹한 채로 있기는 싫고 내가 서먹한 기분이라는 걸 보여주기도 싫으니... 난 무언가 지금 다른 것을 하고 있어. 그래서 바쁘니 나에게 굳이 다가오지 말아줘. 난 군중과 있지만 군중과 격리되어 나만의 field 안에 있는 상태야. 이를 위한 책, 워크맨.
자신이 어색한 상태임을 들키지 않으려 도리어 활달한 척하는 유형의 타잎인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의 경우도 이들과 함께 있으면 제풀에 지쳐 난 쟤들과는 달라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일종의 잘 갖추어진 전통적인 소형 A.T. field.
가출한 신지가 무한히 반복되는 순환선 전철에 올라타 무한 오토리버스가 되는 워크맨을 들으며 군중의 고독을 종일토록 느끼는 장면은 쓸쓸, 무기력, 응석, 사회 부적응 그 자체.
기타, OVA 내내 신지가 심경의 변화를 느낄 때에는 항상 햇빛이 강한 전철 칸에 독백을 하거나, 레이와 아스카와 같이 대화를 하며 심경의 변화를, 변해가는 자아를 깨우쳐 가게 된다.
신지, 레이, 아스카의 3 유형은 사는게 서투른 사람들의 전형적인 유형일지도 모른다. 항상 어쩔줄 몰라하는(신지), 냉랭하고 혼자가 도리어 편한 (레이), 강한체 하는(아스카) 유형에서 사람들은 자기공감을 느끼는 걸지도.
2008년 10월 22일 수요일
에반겔리온에 대한 HK 의 잡설 #1 - 영화적 소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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