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7일 일요일

1. 대학원 생활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대학원 생활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1. 대학원 생활을 보람차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기대와 목표를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나의" 라는 단어를 굳이 강조한 이유는, 학생마다 다 기대하는 바와 목표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고, "나의" 마음 속에만 있는 기대와 목표를 지도교수에게 이야기 하기 전에는 지도교수가 독심술이 있는게 아닌 이상 이 욕구를 충족시켜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본인의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 그간 수많은 대학원생 입시 면접을 들어가 보고 학생들을 겪다 보니 느낀 점이지만, 일부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스스로까지 속이게 되어가는 경우가 있다. 면접 때에는 당연하게도 (혹시라도 속물처럼 보일까봐) 포장을 하게 된다. 

"적어도 석사까지는 해야 원하는 기업에 취업될 것 같더라고요. 학부가 사실 좋지 못해서 학력 스펙을 높이고 싶어요." 

라든가

"직장에서 좀 더 오래 버티고 위로 더 올라가려니 석사까지는 해야 겠더라고요."

라든가

"전 직장인이니 직장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지원하려고 합니다. 사실 학부 졸업한지는 꽤 세월이 지나서 학문적으로 성과를 내보겠다기 보다는, 대학원에 와서 인맥도 쌓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도 도움될만한 동기들 많이 만나고 싶어요." 

라고 솔직히 이야기를 못할 이유가 없다. 공부하고 스펙을 높이겠다는 욕구는 전혀 나쁘지 않고, 자존감이 낮은 점이나 열등감 역시 삶에 있어 추진력을 얻기 위한 큰 동기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지도교수에게 개별적으로라도 순수히 이야기 해주는 것이 좋다. 좋은 교수라면 오히려 맞춤형으로 박사까지 진학할 예정이고 아카데믹 커리어를 쌓고 싶다고 미리 밝힌 학생에게는 논문 주제를 더 많이 제시해 주거나, 잦은 마감에 지치고 힘들지라도 중요한 컨퍼런스들에 하다못해 포스터라도 투고해 보도록 독려를 해줄 수도 있을 것이고, 석사 마친 후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에게는 진출하고 싶은 분야 프로젝트에 투입을 하여 (지금 투입된 과제 수가 꽤 많더라도) 경험을 많이 쌓게 하고, 업체분들과 미팅 시에 같이 참석시켜 미리 소개드리는 자리를 마련해 주거나, 이력서를 살펴보아 줄 수도 있다. 

또 본인의 욕구를 자기 스스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원하는 연구실에 지원을 할 수 있다. 어떤 교수님 랩은 프로젝트는 좀 덜하더라도 (대학원 기간동안 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겠지만) 이론 공부, 논문 스터디를 확실히 푸쉬하는 문화가 있어서 "저 랩에 들어가면 최신 이론 정말 확실히 배운다" 라는 랩이 있고, 어떤 교수님 랩은 "저 랩은 프로젝트가 정말 많아 바쁘긴 한데, 실험 데이터 얻으려면 프로젝트를 할 수 밖에 없기도 하고, 논문 쓰는데 필요한 데이터는 (구하기 어려운 데이터는) 확실해." 라는 랩도 있을 것이다. 

본인의 목표가 학업적 성취가 아니라 졸업장 + 취업을 위한 실용적 지식을 얻는 것인데, "저 교수님 AI 쪽으로 유명해", "저 랩이 공대 Top 이라던데..." 라는 얄팍한 정보에 의지해 해당 랩에 지원한다면 대학원 생활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본인의 욕구와 비슷한듯 하지만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본인이 수학에서 손을 뗀지 오래이고 벡터와 행렬도 고등학교 때 배우지 않았다면, 머신러닝을 중요한 도구로 활용하는 연구실에 들어간 들 "아, 내가 이런 연구를 한다, 이런 연구실에 들어왔다" 라는 표면적인 만족감 외에 성취에서 얻는 진정한 만족감은 얻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 교수님의 추구하는 바와도 다르니 졸업 조차도 (본인의 애초 목표인 졸업과 취업) 멀어지게 될 것이다.  


 2. 1번과 맞물려서 본인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과거 경험상 대학원 생활에 가장 적응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아래 유형이 아닐까 생각된다. 

첫번째 유형: 내가 잘 모르지만 "하고 싶은 분야, 멋져 보이는 분야" 로 석사를 지원하여 입학한 경우 

기본적으로 석사과정은 짧다. 그리고 입학 자체는 쉽다. 하지만 이제 막 출발선상에 섰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입학하고 랩에 입실해서 눈감았다 뜨면 벌써 졸업논문 심사기간이 다가온다. (사전 준비 없이 들어오게 되면 총 체류학기 4학기 중 첫 1학기는 적응하느라 날리고, 마지막 학기는 졸업준비하느라 날린다.) 짧은 기간 동안 좋은 논문을 적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쓰려면 기본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분야 보다는 "잘 아는", "잘 하는" 분야를 토대로 해야 한다. 

내가 AI 에 대해서 한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데 AI + 보안 (AI for Security) 이 핫하더라 라고 해서 그쪽 연구실에 어떻게든 들어가 본들, 유의미한 수준높은 논문을 제때 낼 수 있겠는가? 동일 분야에서는 학부 때부터 AI 배경지식을 가진 연구자들이 (석사1년차~교수들까지 다 이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가득한데 말이다. 오히려 제때 졸업조차 못하게 되어 취업 하고자 하는 기업의 인사팀에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될 것이다. (지원자는 왜 다른 사람들 다 2년에 마치는 석사과정을 3년에 마쳤나요? 라고 묻거나, 굳이 묻지 않더라도 석사생활이 불성실했거나, 능력이 안되어 논문을 제 때 못낸 것으로 이미 간주하고 있을 것이다. )

두번째 유형: 대학원에서 학부 때 배우지 못한 내용을 과목수강을 통해 지식을 많이 습득하고 싶은 경우 

학부 때는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대학원 생활은 좋은 성적을 받아보겠다는 자존감, 마음의 빈곤과 결핍으로 거창하게 연결지을 필요는 없다. 

단지 우선순위 관리의 문제인데, 대학원 생활의 가장 큰 거시적 목표는 "실용적인 경험", "훌륭한 논문" 이지 "높은 평점 획득" 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마치 온라인 인터넷 강의 골라서 학원 수강하듯이, "등록금이 얼만데... 과목 수강 제한이 딱히 없으니, 이 과목 저 과목 다 들어볼래" 라고 하다가 연구에 집중해야 할 시간도 날리고, 과목마다 있는 텀프로젝트에 치이다가 쓰러지게 된다. 

연구는 단순히 수강과목 점수를 잘 맞는 것과는 너무다 다른 종류의 task 이다. 그리고 취업시, 유학시 학부 평점은 유심히 보지만 석사나 박사과정의 평점은 대부분 채용기관에서 신경쓰지 않는다. 대학원 평점은 너무나 학생이 불성실하여 낙제점을 맞은 것이 아닌한 대학에서 교수로 채용을 할 때에 어떤 저널이나 컨퍼런스에서 논문을 발표하였는가를 신경쓰지 그 사람의 석사 평점이 4.0 이상인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또 기업에서도 대학원 교수님들이 대학원생들에게 일반적으로 후하게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억하자. 본인은 여러 과목을 수강하여 지식을 많이 쌓고 싶다는 것에 가치를 많이 두었다 하더라도, 당신의 졸업을 평가하는 사람은 당신의 논문에 가치를 더 두고, 연구실에 따라서 "프로젝트" 에 더 가치를 둘 수도 있고 "논문 게재" 에 더 가치를 둔다는 것을. 

대부분 많은 연구과제들의 마감은 (중간보고, 최종보고) 중간/기말고사 기간과 겹친다. 그리고, 미국과 우리와 학기제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중간/기말고사 기간과 큰 시일의 차를 두지 않고 논문 제출 마감날짜가 잡힌 top conference 들이 많다. 

제한된 시간 내에서 기말고사와 논문 마감을 달성해야 한다면, 당연히 지도교수나, 연구실 동료들 중 "연구" 에 방점을 둔 인원들은 기말고사에 올인해서 A0~ A+ 을 맞고 논문이 reject 되기 보다는, 논문이 accept 될 수 있도록 논문작성과 실험에 최대한 시간을 쓰고 과목은 우선 순위를 덜 둘 것이다. 

대학원의 가장 큰 목표는 수업이수가 아니라 연구결과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대학원들이 졸업신청시 기본자격시험 (종합시험, Qualifying exam 등 어떤 이름으로 불리우건 간에.)을 통과하여 baseline 만 맞추었다면 졸업심사의 핵심은 "논문심사" 로 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수한 학생들은 자기관리/시간관리도 잘 하는 경우가 많고, 학부 때부터 다양한 활동을 동시에 여러개 진행해본 경험이 있다면 "논문", "학업", "대외활동 -- 예: 외부 경진대회 (챌린지) 참석" 을 동시에 다 잘 달성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예외로 하고, 이 내용은 일단 본인의 대학원 진학 목표를 아직 스스로도 잘 파악하지 못한 경우로 한정하도록 한다. 

 3. 학문적 성취를 내어 아카데믹 커리어를 걷고 싶다면 무조건 빨리 준비해야 한다.  

조교수 1년차 1호봉 임용 나이는 요즘 많이 늦춰지긴 했지만, 그래도 30대 초중반이 일반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학원 기간 중 '질' 뿐 아니라 '양' 도 추구를 해야 임용 서류 평가시에 유리하다. 
그래서 빨리 논문 아이디어 도출 및 투고가 진행되어야 한다. 석사 1학기차에 아이디어를 한두개 내고, 첫 방학 때 초안 작업을 들어가서 2학기차에 컨퍼런스에 투고하는 스케쥴로 간다고 가정하고, 투고한 논문이 석사 3학기 내에 accept  되는 경험을 해볼 것을 권한다. 
Call For Paper 를 읽고, 아이디어를 내고, 투고 - revision (또는 rebuttal) - accept - camera ready/gallery proof 까지 full cycle 을 빠르게 경험해보고, acceptance letter 를 받았을 때의 짜릿함을 빠르게 경험해 보는 것이, 향후 본인이 아카데믹한 커리어를 밟아 나가는데 큰 초석이 된다고 생각된다. 

석사 과정 때 1~2 편의 실적이 쌓이게 되면 비로소 본인이 '연구' 에 재능 또는 흥미가 있는지, 적성에 잘 맞는지를 알게 된다. 이 경험이 없는 채로 박사과정까지 한번에 가게 되어 박사 2년차 쯤 '난 논문쓰는게 너무 싫어. 연구에 재능이 없나봐.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라고 번아웃하게 된다면 남은 박사과정은 정말 힘든 나날이 될 것이다. 

연구분야에 적성이 잘 맞으면 사실 학교보다도 좋은 곳이 없다. 
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기도 하고, 논문 외적인 스트레스 요소는 회사보다 훨씬 덜하기도 하고 (사내정치라든가, 40대 중반에 임원이 되지 못하면 회사를 이제 그만두어야 하나.. 같은 걱정이라든가). 


 4. 결론 

요즘 대학원 입시철을 앞둔 시점에, 별 도움 안되는 참으로 라떼 한잔 같은 느낌의 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게 무언가를 잘 모르는채, "대학원만 가면 무언가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던 과거를 털고 날아오르지 않을까, 학부때까지 내가 그간 얻지 못했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대학원 진학이라는 중요한 결심을 하지는 않는지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하여 짧으나마 글을 써보았다. 조금이라도 이 글이 도움되는 분이 계시다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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